오랑캐 홍타이지 천하를 얻다 정한식 저
-창업주 누르하치를 능가한 청태종의 2세 경영-
홍타이지(皇太極)는 여진족이 세윤 후금의 창업주 누르하치의 뒤를 이어 1626년 2대 왕에 취임하였다. 8번째 아들이지만 長男이 아니라도 强男이 후계를 잇는 민족전통에 따라 왕이 될 수 있었다. 중국 역사를 보면 왕조의 창업주를 뒤이은 2대왕이 모자랄 경우 왕조는 단명하였다. 홍타이지는 후에 태종이라는 존호에 걸맞게 淸이라는 황제국을 세운 제2의 창업주라 불릴만한 업적을 쌓았다.
홍타이지가 수장에 취임할 당시 상황은 좋지 않았다. 군사적으로는 명나라의 원숭환이 홍이포를 가지고 영원성을 지키고 있어 두 번이나 공격해도 실패하였고, 흉년이 들어 식량이 부족한데다 명이 교역을 끊어 경재가 어려웠고, 조선과 몽골은 아직 복속시키지 못했고, 정복지의 요동 한인은 협력을 하지 않았다. 또 취임 당시 다른 세명의 실력자들과 함께 신하들의 하례를 받았을 정도로 왕권이 제한을 받았다. 이런 문제들을 지혜롭게 풀어나간 홍타이지는 정말 놀라운 사람이다.
홍타이지를 도운 것은 당시 주변국의 수장들이 변변치 못했다는 점이다. 명나라는 숭정제가 신하들을 믿지 못해 함부로 죽이고 자주 교체하는 사람이었다. 조선은 인조가 반정의 명분 때문에 후금을 적대하나 우유부단한 사람이었다. 몽골은 여려 부족으로 나뉘어 있어 각개격파가 가능하였다.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홍타이지는 몸을 낮추어 명나라와 조선에 교역을 청하고 요동 한인들에게 과거의 살육을 사과하고 농사를 짓도록 설득한다. 교역이 뜻대로 되지 않자 침략을 통해 물자를 확보한다. 전쟁을 하면 이기고 돈을 번다는 인식이 있어 병사들과 일반국민들도 전투기회를 기다렸다. 요동한인은 충실한 협력자로 변한다.
정묘호란을 일으켜 조선을 제압한 후 몽골을 정벌하여 산해관을 거치지 않고 만리장성 안에 침투할 몽골루트를 개발했다. 다섯 차례나 몽골루트를 통해 쉴 새 없이 공격하여 물자를 약탈하고 명나라를 혼란에 몰아 넣는다. 이렇다할 명나라의 저항도 없었다. 마음만 막으면 얼마든지 땅을 확보할 수 있었으나 재물만 가져갔다. 도적떼가 일어나 명나라가 저절로 무너질 때 한꺼번에 취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큰 나무를 벨 때 잔가지부터 쳐내고 줄기를 자르는 식이다. 결국 이자성이 자금성을 취하고 대순국을 칭했을 때 숭정제의 원수를 갚아준다고 도적을 정벌하니 중국을 차지하게 된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청에 귀순한 한인 법문정의 4대 치국방침에서 나왔다. 누르하치에게 귀순한 사람이었는데 홍타이지가 심복으로 삼았다. 법문정은 중국의 제도를 도입해 내각을 만들고 황제의 권력을 키웠다.
명의 숭정제는 청의 공격을 막아낸 원숭환을 적과 내통했다고 의심하여 살점을 잘게 저며내어 죽이는 형을 가하고 그 시체를 군사들에게 보여 주었다. 또요지를 지켜 이자성의 북진을 막아야 한다는 손전정에게 빨리 도적의 근거지를 공격하라고 닦달하니 결국 실패하여 이자성이 북경을 점령하게 만들었다. 연간 수십만냥 정도 예산을 아낀다고 역에서 일하는 잡부들을 모두 해고하니 그들은 도적떼에 합류하였다. 숭정제가 죽었을 때 황제 개인금고에 3600만냥이나 있었다고 한다. 만력제도 돈을 쌓아놓고도 전비를 내는데 인색하였는데 못난 집안 내력인 것 같다.
홍타이지는 조선 침공에 앞서 조선과의 전쟁이 장기전화 하는 것을 극히 경계했던 것 같다. 역사에 밝았으니 고려가 몽골에 맞서 40년간이나 버텼고 임진난 때 비록 한양이 속히 점령당했으나 7년이나 끌어 결국 일본군을 몰아낸 것을 염두에 두었으리라. 또 산악 지형인데다 길이 좁아 철기병의 돌격작전이 제약을 받는다. 조선인들에게 변발을 강요치 않고 일본과의 외교권을 인정하고 인조의 왕권을 보장한 것은 현명한 일이었다.
병자호란에 앞서 홍타이지는 조선사신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희 나라가 산성을 많이 쌓는다는데 만약 내가 큰 길로 곧바로 한양으로 향해도 산성으로 나를 막을 것인가? 너희가 믿는 것은 강화도인데 만약 내가 팔도를 다 유린해도 조그마한 섬 하나로 나라를 이룰 수 있겠는가? 척화를 주장하는 자들은 유신인데 그들의 붓대로 우리 군대를 물리칠 것인가?...이런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으니 조선사람의 귀는 대단히 두꺼웠던 것일까?
전쟁 때도 속히 항복을 받는 것을 중시하여 노략질을 엄히 금지했다한다. 사람들을 잡아간 것은 항복을 받은 후 전쟁비용을 충당키 위해 군정하에서 조직적으로 끌고 간 것이라 한다. 중국인들과 달리 조선인들은 속환금을 잘 가지고와 양반들의 경우 단가가 몇 배로 뛰었다한다.
1643년 8월 52세의 나이로 홍타이지는 병이 없이 급사한다. 누군가는 돌연한 죽음을 좋은 죽음이라 했다는데 그런 죽음이다. 법문정은 그 후에도 1666년까지 살며 후임 황제를 보필한다. 순치제가 겨우 6세로 황위를 잇고 다음 강희제가 8세로 등극하여 60년이나 치세를 펼친다. 그 뒤로 옹정제 건륭제가 장기간 집권하는 데 중국 역사상 중흥기라 할만한 강건성세를 이룬다.
만주족은 몽골인들보다도 더 한국사람과 혈통상 가깝다고 한다. 아마도 고구려의 주축을 이루지 않았을까한다. 신라의 뒤를 이은 왕조가 한화되어 사대주의에 빠졌는데 만주에 남은 사람들은 씩씩하게 금나라 청나라를 세우고 오늘 날도 중국내에 1000만명 정도 남아 떳떳하게 인정받고 있다니 기쁘다. |
